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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가 끝나갈 무렵의 어느날 저녁 뉴욕의 한 당구장.  시거를 물은 신사는 큐를 들고 온 집중을 다했습니다.

아름다운 당구공. 이날 처음 써보는 신상품이었습니다.

상아는 아닌 것 같은데 매우 매끄럽고 단단했습니다.

이 당구장의 단골인 그는 주인이 건네 준 당구공을 처음 본 순간 매우 예쁘다고 느꼈습니다.

아직 질감에 익숙하지 않아서, 미묘하게 공이 어긋났지만 게임도 잘 풀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구, 이 공만 맞으면 오늘도 기분좋은 승리를 합니다.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두세번 큐를 움직여 보더니 정신을 집중해서 타격을 했습니다

나이스샷!

원하는 타점에 정확히 들어가는 궤적이었죠.

파앙!

갑작스러운 굉음 후 시끌벅적하는 당구장은 정적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누가 총을 쏜 것인가?

단 한사람, 오직 잭만은 그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당구공을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방금 본인이 친 공이 목적구에 맞는 순간 불꽃이 튀더니 폭발해 버린 것입니다.


반 합성수지 셀룰로이드가 나오기까지.

지금은 당연하지만 열과 압력으로 그 형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1800년대 초만해도 꿈과 같은 일이었지요.

그러니 나무나 돌같은 것을 깍거나 진흙 등을 빗어서 만들어 써야 했습니다.

모양을 만들면서 충격에 쉽게 깨지지 않는 천연 물질은 많지 않았죠.

깍아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단단한 상아는 매우 고급스러운 천연 재료이었습니다.

플라스틱이 없던 시절, 가벼우면서도 적당히 강한 상아의 인기는 매우 높았습니다.

그 희소성으로 인해 매우 비싸게 거래되었죠.

 

영국출신 과학자인 알렉산더 파크스는

1862 영국 런던 국제 산업예술 발람회에  특이한 소재를 출품합니다.

파크신(Parkesine 1856년 특허취득)이라는 제품이었어요.

천연 셀룰로오스에서 추출해서 인공적으로 물성을 변화시켜 만든 반 합성 수지 제품이었죠.

반 합성수지란 천연에서 추출하지만 화학적 처리를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천연수지와 구별되는 개념이에요.

파크신은 천연섬유에 의존하던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제품이었습니다.

박람회에서도 동메달을 따낼 정도로 관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초기제품이 그러하듯 매우 조악했지요.

너무 딱딱해서  가공하기 힘들 뿐더라 유연성이 부족해 깨지거나 부식되는 등

일정한 품질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파크신의 상업화에는 실패하고 파산합니다.

그 후, 사업파트너였던 스필은 파크신을 개량하여 체스말을 만드는 등

신소재의 연구는 계속 되어 갑니다.

 

동일한 시기, 뉴욕에 한 인쇄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회사가 물건 하나를 잘 만들어 주면 1만달러의 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에 매료됩니다.

그것은 당구공이었죠.

 

당시 당구가 귀족들 사이에서 초 절정의 인기레져였습니다.

플라스틱이 없었을 때, 당구공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나무로 만들기도 했지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상아였습니다.

당구의 인기가 치솟을 수록 상아의 수요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습니다.

가볍고 단단하고 매끄러운 상아는 나무가 흉내낼 수 없는 질감과 강도를 가지고 있었죠.

점점 상아 당구공은 공급이 수요을 쫓아가지 못하고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코끼리의 불법 수렵도 큰 문제가 되었죠.

큰 상금에 매료된 인쇄공은 수없이 실험을 거듭한 끝에

셀룰로오스에 캄포어라는 가소제를 첨가하여 가열, 압축을 통해  반 합성수지를 개발해냅니다.

천연 셀룰로오스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완전한 합성 수지는 아니었지만 화학적 처리를 해 만들어냈기에 반 인조(합성) 수지였던 것이죠.

이는 실온에서 절삭, 연마, 광택처리가 가능한 획기적인 물성을 가진 신소재였습니다.

다만, 까다로운 심사때문에 1만달러의 프로젝트에는 채택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인쇄공은 실험과 개선을 거듭하여 제품화에 성공하고,

이 소재로 특허를 취득하여, 셀룰로이드라는 제품명으로 출시합니다.

그 인쇄공은 바로 미국 연구가 John Wesley Hyatt(존 웨슬리 하이엇)였지요.

셀룰로이드가 출시되자마자

수많은 제조업체가 이 라이센스를 취득해 브러쉬 손잡이, 피아노 건반, 빗 등의 제품을 만들어 갑니다.

당구공 또한 공동투자자와 함께 회사를 설립해 바로 대량생산에 들어갑니다.

귀한 상아를 대체할 수 있는 셀룰로이드 당구공은 바로 불티나게 팔리게 됩니다.

상아보다 더 가볍고 단단하고 광택나는 이 물질을 사람들은 인조상아(artificial ivory)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천열셀룰로우스와 첨가물에 포함되어 있는 화약성분으로 인한 인화성 때문에 종종 폭발을 일으키고 화재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당구장에서 들린 폭발음으로 인해 경찰에 총기발사사건으로 신고가 되었다는 일화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혁신적인 소재 셀롤로이드의 개발을 이끌어낸 것은 당구공이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혁신적인 소재의 유용함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인화성 물질이라는 취약성도 함께 알리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상업화에 성공한 최초의  반 합성수지, 셀룰로이드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20세기 초(1907년), 천연소재 없이 화학적 결합만으로 만들어내 완전한 인공 수지,

베이클라이트의 출현과 동시에 본격적인 플라스틱 시대를 맞이 하게 됩니다.

플라스틱이란 이름이 쓰여지는 것도 베이클라이트 이후입니다.

그러나, 셀룰로이드가 플라스틱의 원조라는 말이 있을 만큼, 후에 셀룰로이드는 플라스틱의 한 종류로 인식되며 발전해 나갑니다.

<셀룰로이드의 발전>
1단계 — 당구공 대체재 (1869~1870s)
  • 존 웨슬리 하이엇이 상아 당구공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했습니다.
  • “상아보다 싸고 가볍다”는 장점 덕분에 초기에 시장의 엄청난 주목을 받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인조상아(artificial ivory)라고도 불렀습니다.

2단계 — 생활소품·잡화 (1870s~1890s)
  • 빗, 단추, 칼 손잡이, 장난감 등 천연재(뼈, 거북껍질, 상아)를 대체했습니다.
  • 가볍고 착색·성형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인기가 많았죠.

 3단계 — 사진·영화 필름 혁명 (1880s~1900s)
  • 셀룰로이드가 투명하고 유연하다는 특성을 이용해  사진 필름·영화 필름 기초재로 사용하였습니다.
  • 코닥(Kodak)롤필름이 바로 셀룰로이드 기반으로 만들어 진 거에요
  • 이게 영화 산업 태동과 대중문화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죠.

4단계 — 글로벌 확산 (20세기 초)
  • 20세기 초에 플라스틱이라는 개념이 생겨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셀룰로이드 = 범용 플라스틱”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 특히 여성들의 머리빗, 장신구, 안경테, 칫솔 손잡이 등에 사용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 하지만 강도에 한계가 있고, 인화성 때문에 고성능 제품에는 사용하기 어려웠지요.

5단계 — 진정한 플라스틱 등장 후 쇠퇴 (1907 이후)
  • 베이클라이트(1907, Leo Baekeland) 같은 열경화성 수지가 등장 → 강도·내열성에서 압도합니다.
  • 이후 셀룰로이드는 주로 장식용·잡화·필름용으로 한정되게 됩니다.
  • 결국 20세기 중반 이후엔 안전성 문제로 영화 필름조차 아세테이트 필름으로 대체되어갑니다.

🔹 정리해 보면,
  • 범용화: 값싸고 천연재 대체 가능 + 착색·성형 자유 → 생활용품·필름 산업 전반에 확산됩니다.
  • 쇠퇴 원인: 인화성·강도 부족 → 베이클라이트, PE, PP 같은 후속 플라스틱에 자리를 내주게 되지요.


셀룰로이드는 상아·거북껍질 같은 천연재를 대체하며 생활소품에서 영화 필름까지 대중문화에 깊게 침투, “합성수지 대중화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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